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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牧師)는 바울을 본(本)받고 있는가?

[ 2023-10-25 10:03:32]

 
‘본뜬다’는 것과, ‘본받는다’는 말의 뜻이 같다. 국어사전에도 각각 ‘무엇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좋아한다.’ ‘본보기로 하여 그대로 따라 한다.’라는 것으로 나온다. 다만 ‘본뜬다’는 ‘이미 있는 대상을 본으로 삼아 그대로 좇아 만들다.’라는 뜻이 하나 더 있다. ‘본받는다’라는 말은 ‘그대로 따라 한다.’는 의미가 있고 ‘본을 뜬다’는 것은 ‘복사하듯이 그대로 판박이로 찍어내듯이 똑같이 한다.’는 뜻이 있다. 이는 나쁜 것이나 좋은 것이나 가리지 않고 해당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버릇을 자식이 그대로 따라 해서 어머니가 자식을 보면 “제 아비 판박이라", 자식이 하는 짓을 보면 “지아비 하는 짓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말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본뜬다’는 것은 좋건 나쁘건 상대의 행동이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뜻이 강한 데 비해, ‘본받는다’는 것은 상대의 좋은 점과 나쁜 점과 언행만 취한다는 의미가 강한 셈이다. 그래서 본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해서 아이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본뜨게 마련이어서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 앞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아이가 본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지지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變化)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 분별(分別)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말하기를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라고 하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내가 본을 보였노라.”라고 하신 말씀을 좇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본받을 것이 있고 본받아서는 아닐 것이 있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바리새인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라고 하였다. 사람이 남이 잘하는 것은 본받고 잘못하는 것은 본받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같이 우리도 바울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했으니 예수님처럼 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의 종인 바울 정도는 우리도 본받으려고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예수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오예물(汚穢物)과 같이 버렸다.
 
바울은 세상의 모든 것을 예수보다 더 사랑하면 나와 상관없다는 주의 말씀대로 하였다. 예수께서 “집이나 전토를 버리고 나를 따른 자에게 백배나 더하신다는 말씀대로 그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렸다."라고 하였다. 예수는 “부모나 처자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치 않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베드로도 직업과 도구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른 것같이 바울 사도도 자신의 모든 것을 미련 두지 않고 다 버렸다고 스스로가 고백하였다.
 
누구보다도 “우월한 신분과 학위(學位), 베냐민 지파라는 우월감, 율법으로도 흠(欠)이 없는 것,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배설물(排泄物)같이 여기고 버렸다.”라고 하였다. 즉 대소변과 같이 취급하였다는 것이다. 오직 자랑할 것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의 목사들은 학위 자랑을 하는데 바울을 본받았다면 강단에 서서 강론할 때에 목회 가운보다 학위 가운을 입고서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아니할 수 없다. 바울 사도를 본받는 것이 아니고 가짜 박사학위까지 받아서 과시하는 것은 위선자가 아닐까?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바울은 주의 일을 하면서 수고한 것이 단순한 수고 정도가 아니고 순교 직전까지 이르게 되었다. “내가 수고를 넘치게 하고도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를 감한 매를 5번 맞았고 돌로도 맞고 자지도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헐벗었다”라고 하였다. 이는 사람으로서는 참기 매우 힘든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이 외에 일은 고사하고 내게 눌리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라고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말하기를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니 죽는 것도 유익하니라.”라고 하였다.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하는 말이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하였다. 오늘의 목사들은 이 점에서 바울을 본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부끄럽게도 목사가 은퇴하면서 교회를 팔아서 은퇴금(隱退金)을 달라 하여 교회 예배당을 매각하여 은퇴금으로 받아 가는 기막힌 시대라는 점이다. 어디 그뿐인가? 생활비 인상하라, 외제 차 사달라 온갖 요구를 다 하고도 바울을 본받았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뿐이면 신사적이다. 교회 앞에 죄를 짓고도 사면(辭免)할 테니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뻔뻔한 일들이 비일비재한데 이는 참으로 교회와 교인들을 위하는 목사인지 자기를 먹이는 삯꾼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 아니할 수 없다. 바울은 목회자로서 말하기를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라고 말하였다. 이는 신앙 양심상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아니하였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사명 감당에 대하여 말하기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 은혜의 복음을 증명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였다. 목사의 가는 길은 십자가 지는 길이다. 그런데 십자가는 용달차에 싫어 보내고 자기는 외제 차 타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예수를 본받는 것도 바울을 본받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와 같은 각오로 바울 사도의 목회자 상을 본받아야 한국교회가 부흥될 것이다.
 
이윤근 목사 (본보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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